낙서면 부곡마을
면소재지(방계)에서 오리남짓 낙동강물이 저만치 바라보이는 작은마을이다.
오운마을을 지나 큰골산 등대넘어 깊숙이 들어 앉은 마을인데 마을 뒷산 잘록한 고개가 있다. 이고개가 <까막꼬>로서 신반,유곡쪽으로 통하는 산길인데 마을이름도 이 고개에서 유래되었음을 확인 할 수 있다. 그런데 까마귀골 □ 까막골□가막골(가막실)□가말 등으로 변음변천 된 것이며 까마귀가 흉조라는 의식 때문에 오곡을 부곡으로 바꾸었다는 설명도 상당한 근거가 있는 것이다.옛날 강물이 넘쳐서 집마당까지 물이 들었고 마을은 사방으로 막혔던 침수지역인데 오직 북쪽 산고개<까막꼬>만이 외부로 통할 수 있는 유일한 길목이었다고 한다.
신반 닷새장을 보기 위해 넘어다닌 재라서 흔히 <장꼬(장고개)>라고도 부른다.
이 고개 옆에 묵은 묘가 있으며 일제침략기 이후 공동묘지가 되었다. 그래서 그런 까막까치가 많이 모이는 곳이며 그 아래 골에는 겨우살이 덩굴이 많아 자생하여 <인동골>이라 부른다. 까막재 먼당에 큰 정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 한말 우국지사요 백산선생의 족형으로서 동학혁명에도 깊이 관여하신 안교리 선생이 손수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.
까마귀가 이 까막재에서 도망쳐 숨을 때는 오은골(烏隱인데五雲으로바꿈)이고 잠 잘때는 오소말(烏巢인데 五所로 바뀜)이란 재미있는 이야기도 있다. 솔직히 골이라고 <가느족골> 돌감나무 산죽이 많아서 <감죽골>,강쪽으로 <큰골><작은등골><잡동골><대밭골>등 골이름은 그대로 불리고 있다. 마을어귀에 <삼밭골>이 있었다. 한취정은 안악 이(□)씨 재실이다. 잡동골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이건했다. 안악 이(□)씨가 터줏대감으로 8집이고 담양 전(田)씨. 김해 허(許)씨. 김해 김(金)씨가 두집씩 모두 15가구가 살고 있다.